사실 평소에 관현악 관람을 즐기거나 클래식에 해박한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사용하지 않는 교회에서 음악을 연주한다고 하니, 비발디의 나라 베네치아에 온 김에 비발디의 <사계>를 관람하였다.
첫 관현악 관람일 뿐더러 비발디의 <사계>는 지나가다 몇 번 들어본 게 전부이고 그저 수능 영어듣기평가 전주라는 사실 뿐.
걱정 반 기대 반인 상태로 50분 일찍 교회에 입장하였다.
(50분 정도 일찍 줄을 서니 맨 앞자리는 아니지만 꽤 앞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첫 인상은 ‘와! 신성하다.‘
유럽 대부분의 성당이 그렇듯 (한국인의 시각에서) 멋스러운 제단 그림과 조각상들, 높은 천장이 어우러져 굉장히 holy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악보가 놓여질 보면대들은 꼭 맞춰진 퍼즐처럼 제단 앞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1:00 정각에 맞춰, 공연이 시작되었다. (공연 중에는 사진이나 비디오를 찍지 말아달라는 지침에 따라 촬영한 사진은 없다.) 검은 옷의 상하의를 입고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 각자의 악기를 들고 오는 연주자들은 기품있고 자신감에 차보였다.
각설하고 이 공연이 좋았던 이유는 3가지이다.
첫 번째, 비발디의 <사계>는 모든 악기가 정확한 타이밍에 ‘짜잔-‘하며 연주되는 도입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청중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도입부의 에너지와 악기들의 화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두번째, 보통의 오케스트라 공연장보다 훨씬 협소하다 보니 연주자가 악기와 교감하는 몸짓, 표정 등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바이올린 활을 느리게 뽑을 때면 마치 하나가 된듯 느려지는 연주자의 표정, 빠르게 뽑을 때면 순식간에 비춰지는 강인한 표정. 심지어 연주를 시작하기 전, 연주자의 떨림이 담긴 심호흡까지 들릴 정도였다.(따라서 앞자리에 앉는 것을 추천) 눈을 감고 음악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음악과 교감하는 연주자의 에티튜드를 보는 것 또한 이 공연의 백미이다.
마지막으로, (아까 위에서 말했듯) 사용하지 않는 성당에서 진행되는 공연이다보니, 성당 특유의 분위기와 그림, 조각상들이 비발디의 음악과 어우러져 홀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성당 특성 상 고도가 높고 소리가 부딪히는 물건이 적다보니 풍부한 소리를 즐길 수 있다. 한국에선 경험하기 힘든 홀리함이니 한 번 쯤 꼭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총 공연은 1시간 30분 정도 진행되지만 중간에 쉬는 시간도 있고 노래가 바뀌는 구간에 쉴 수도 있어, 그리 길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베니스의 겨울과 잘 어울리는 공연이었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관람 의사 10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