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들어온 지도 벌써 10일이 되어 간다. 한 학기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세계 곳곳을 누빈 게 거짓말인 양 무섭도록 빠르게 한국에서의 삶에 적응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교환학생을 가기 이전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 인생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온 지 10일도 되지 않아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있다.
돌이켜보면 교환학생으로 처음 시도해 본 것이 굉장히 많았다. 혼자 여행을 가는 것, 부모님 없이 혼자 사는 것, 혼자 비행기를 타는 것, 혼자 제대로 된 요리를 하는 것, 외국인 친구와 둘이 여행을 가는 것… 인생에서 이렇게 짧은 시간동안 기하급수적인 환경적, 사회적 변화를 겪을 수 있을까? 인생에서 다시는 만나기 어려운, 그 과정 속 느꼈던 깨달음이 휘발되는 것이 아쉬워 그간 얻었던 깨달음에 대해 정리해 보려고 한다.
완벽하지 않은 영어와 형편없는 불어실력. 낯선 문화와 잦은 변수. 기분 좋게 여행을 하다가도 크고 작은 어려움에 봉착할 때면 그냥 집에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럴 때는 '밑져야 본전, 한 번만 더 부탁하자. 안되면 말고' 마인드가 큰 도움이 되었다.
참 신기하다. 늘 한산했던 보르도 공항이 내가 늦게 도착한 그날만 사람이 가득하다. 발을 동동 구르다가 정말 비행기를 놓치겠다 싶어 내 앞에 서있는 사람들을 붙잡고 '비행기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데, 먼저 가도 괜찮을까요?' 부탁했다.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것도, 부탁을 받는 것도 어색하던 내가 먼저 싫은 소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크나 큰 도전이었다. 예상외로 너무 흔쾌히 양보해 주는 사람들. 심지어 한 번은 스페인어를 모르는 나 대신, 내 앞사람에게 '이 소녀의 게이트 클로즈 시간이 임박했다고 하는데, 순서를 양보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라고 물어봐준 사람도 있었다. 물론, 운 좋게 친절한 사람들을 만난 걸 수도 있다. (실제로 어떤 나라에서는 '그러면 네가 더 빨리 왔어야지'라는 말과 함께 비행기를 놓쳤다.)
그럼에도 '밑져야 본전' 마인드없이 누가 내 상황을 알아채주길 기다리기만 했다면 아마 비행기를 놓치고 2배의 시간과 돈을 지불했을 것이다. 물론, 공항에 여유롭게 도착하는 것이 가장 최고의 방법이지만 세상에는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밑져야 본전' 마인드를 내재하는 것은 인생을 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반복적으로 비슷한 교훈을 얻다보니, 교환을 가기 전보다 남에게 부탁하고 (다시 한번) 요청하는 것에 능숙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떠넘기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혼자 끙끙 앓기보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물어보는 게 가장 정확하고 빠른 방법이다. '밑져야 본전! 안 되면 말고' 생각보다 세상 사람들은 착하다. 이 때 중요한 건 최대한 공손하게 말할 것! 만약 요구를 들어주지 않아도 상대를 원망하지 말 것!
같이 여행을 했던 친구는 내가 만난 그 누구보다 관심사가 뚜렷했다. 특히 해외 기업 몇 곳과 블록체인에 관심이 많았다. 진로도 그쪽으로 생각하고 있고 전공 공부는 안 해도(?) 관심분야에 대해서는 따로 시간을 내 공부했다. 문과로서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수식이 쓰여있는 책을 혼자 공부할 정도로 진심인 사람이었다. 심지어 여행을 하다가도 틈만 나면 관심 있는 기업과 블록체인 관련 기사를 보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봤을 때 그것들은 그 친구의 세상이었다. 책도 읽고 매일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친구를 만나고 책을 읽어도 그 친구의 삶은 자기의 관심분야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관심사와 꿈에 진심인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나에게 블록체인의 종류에 대해 설명할 때 반짝이던 눈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평소에는 그저 잘 웃고 인생이 마냥 즐거운 강아지 같았다면, 자기의 관심분야에 대해 설명할 때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매서운 호랑이 같았다.
하루는 이스탄불 거리를 걷던 중, 우연히 암호화폐 중개업체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이런 사무소가 길 한복판에 있는 것이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다가 사장님의 눈에 띄어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그저 이 드라마같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튀르키예의 리라가 불안정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암호화폐를 선호하는 상황이다.' 정도 이해하고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있는 나와 달리, 그 친구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또 질문했다. 학부생으로서 알기 힘든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의 현황과 사무소의 실제 고객들 등 은밀한 정보를 알아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의 암호화폐 시장은 이렇다며 노트북으로 검색해 직접 보여주기도 하였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한국의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하라며 사장님의 왓츠앱 번호까지 옹골차게 땄다. 아는 게 있어야 질문도 설명도 할 수 있는 법. 그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를 하다 보니 기회가 생겼을 때 잡을 수 있구나. 아니, 기회를 만들 수도 있구나.
그때 느꼈다. 몰입하는 사람은 반짝인다. 몰입하는 삶은 위대하다.
나도 무언가에 몰입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가. 청년기에 답을 찾아야 하는 질문들.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며 외면했던 질문들. 이제는 부딪혀 답을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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