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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 기회의 공정성이 아닌 결과의 공정성을!

생각/1권1인사이트

by 피리부는소녀 2023. 11. 19.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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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경영학도라면 모를 수 없는 마이클 샌델,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주제가 흥미로워 금방 읽은 기억이 난다.

이 내용은 2021년에 작성했던 독후감으로, 아카이빙 겸 올려 본다. ! 

 


이 책은 '자신이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고, 능력주의가 정부, 사회, 개인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이는 어떻게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의 운명이 개인 책임이라는 생각이 강할수록 우리가 다른 사람까지 챙길 필요를 느끼기 힘들다.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능력주의를 지지하던 사람이었다. 개인이 어디에서 출발하든, 본인이 노력하는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무엇보다 공평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면에 숨겨진 '능력주의적 책임전가'를 알게 된 지금, 더 이상 능력주의를 지지하기가 어려워졌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능력주의'라는 개념을 주장한 이후로, 사람들은 능력주의의 허상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그럴듯 해보이는 능력주의는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완화시켜주는 수단으로 작용하였다. 덕분에 국가는 그저 공평한 기회를 보장하는 데에 집중하면 되었다. 다시 말해, 국가는 결과의 공정성보단 기회의 공정성만 보장한다면 국가의 할 일은 끝이난다. 따라서,이후 벌어지는 불평등한 과정과 결과에 대해선 등한시된다. 기회의 공평함 보장으로 국가의 몫은 끝이 났고 그 이후는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방금 본 내용이 사회가 능력주의를 받아들이는 방안이었다면, 개인은 능력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능력주의는 결국, 과정에 대한 책임도,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내가 져야 하기 때문에 '나만 잘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모든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던져질 때, 주위를 살필 겨를이 없어졌다. 내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기도 벅찼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주의로 이어지며 종국엔 사회적 연대와 유대의 약화를 초래한다. 결과적으론 복지국가를 주장하던 사람들도, 타인을 도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게 된다. 이는 사회계층 꼭대기에 있는 사람만 이득을 보게 만든다. 사회계층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혼자 해도 충분한 사회적,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 이들과 경쟁할 '공평성'을 부여받은 사회계층 맨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보다 훨씬 부족한 자원과 정보를 갖고 그들과 싸워야 한다. 이러한 불평등한 과정으로 인한 그들(하층계급)의 실패는 시스템의 실패가 아니라, 개인의 실패로 여겨진다. 그들이 노력을 안 해서, 덜 간절해서 등 패자에게 행해지는 책임전가는 잔혹하다. 이게 우리가 원하는 공정함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나도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독서토론 동아리에서 토론하고 싶은 주제로 꼽았던 아젠다는 '운도 실력인가?'였다. '운도 능력'이라고 하기엔 우연찮게 장애인으로 태어난 사람, 가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은 능력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는생각이 들었고, '운은 능력이 아니다'라고 하기엔 운이 주는 특혜와 그에 따른 결과 및 보상은 명확했다. 그 당시에는 특별한 결론을 내리지 못 한 난제였지만,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운은 능력이 아니다. 운이 능력으로 인지되는 순간, 야속한 운명과 타이밍에 굴복한 사람들은 패자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들은 '너가 능력이 없어서, 노력을 안 해서 실패한거야'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실제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운도 실력이다'라는 말과 숱하게 맞닥뜨렸다. 그때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운에 좌지우지 되지 않을 정도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인고의 시간 속 고통받는 '나'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실제로, 오늘날 사회적 이동이 가장 잘 일어나는 국가들은 평등 수준 또한 가장 높은 국가인 경우가 많다. 사회적 상승의 능력은 가난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개인의 의지보다는 교육, 보건을 비롯해 직업 세계에서 개인을 뒷받침해 주는 수단에 대한 접근성에 달려있는 듯 보인다. (본문 中)

능력주의가 얼마나 무책임한지, 국가와 개인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너무나도 반복적이고 설득력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결론은 다소 추상적이다. "상승에 실패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도록, 사회적 존경을 받는 일에서 역량을 계발하고 발휘하며 널리 보급된 학습문화를 공유하고 동료 시민들과 공적 문제에 대해 숙의하기" 얼핏봐도 맞는 말 대잔치다. 그러나, 이 맞는 말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답은 모호하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 한 것일수도 있다.) 다만, 능력주의 허상에서 벗어난 유럽국가들의 사회 이동 가능성이 미국보다 높다는 점에서 우리는 능력주의의 불공정함을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함은 명백하다. 능력주의라는 공정의 탈을 쓴 불공정에서 벗어나, 불평등을 인식하고 시스템적 개선을 요구하기. 그 과정 속 타인과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복지국가의 중요성을 깨우칠 것. 이는 공정한 사회에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마지막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도덕 세계의 궤적은 정의를 향해 휘어질지도, 또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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